진실에 닿기 위한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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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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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한 말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정한다.
분명 조금 전에는 화가 났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다시 돌려주면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하고 싶어서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속였다고 이야기하다가도 그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표현하면 기만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며 어느 말이 진실인지 궁금해진다.
처음의 말이 진심이었을까, 나중의 부정이 진심이었을까.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람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자기 경험을 동시에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지금의 자기상과 맞지 않는 앞선 경험을 부정하거나 다른 의미로 바꾸어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상과 “나는 지금 이런 경험을 했다”라는 사실이 충돌할 때,
둘을 함께 품기 어려운 사람은 그중 하나를 밀어낼 수 있다.
어쩌면 자기기만도 의도적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경험을 어떤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상담에서는 이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기도 하고,
그 경험에 하나의 이름을 붙여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면 내담자는 그 이름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한다.
“화가 났군요.”
“아니요. 화난 게 아니에요.”
“자기를 기만한 것 같군요.”
“기만은 아니에요.”
이때 상담자가 어느 한쪽을 진실로 확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이해가 시작될 수 있다.
‘화’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서운함’은 받아들일 수 있을 수도 있고,
‘기만’이라는 말은 거부하지만 ‘자신을 속인 부분’은 인정할 수도 있다.
상담자가 건넨 한마디가 정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그 말을 자신의 경험에 대어보고 받아들이거나 수정하거나 거부하는 과정 자체가 자기 이해가 된다.
나는 상담이 바둑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바둑에서는 돌을 한 수씩 놓으며 자신의 땅을 넓혀 간다.
상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판 위에 한 수씩 놓으며 자기 안에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넓혀 간다.
처음에는 ‘화가 난 나’를 받아들일 자리가 없었다면, 어느 순간
“나는 화내는 것을 싫어하지만 화가 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상만 있던 자리에도,
“나는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어떤 일을 선택하기도 하는구나.”
라는 경험을 함께 둘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상담에서 넓어지는 것은 단순한 자기 지식이 아니다.
내가 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영역, 내 안에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넓어지는 것이다.
자아가 단단하다는 것도 어쩌면 자기 안에 모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자기 모습을 동시에 견딜 수 있는 힘에 가까울지 모른다.
“나는 화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화가 났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인데, 원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한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문장을 모두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바둑에서는 한 수를 잘못 놓았다고 생각해도 다음 수를 둘 수 있다.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마디가 정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부한 말조차 다음 이해를 위한 수가 될 수 있다.
상담자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내담자 역시 처음부터 자기 마음의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의 말과 경험을 하나씩 놓아보면서,
아직 자신에게도 분명하지 않은 마음에 가까이 간다.
진실은 한 번에 발견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에는 말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그 말을 부정하는 마음이 되고,
또 다른 순간에는 그 둘을 바라보는 새로운 이해가 된다.
그렇게 한 수씩 놓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에는 자기 안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경험 하나가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조금 더 넓어진 자신을 만난다.
상담은 어쩌면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진실이 머물 수 있는 자기 안의 자리를 넓혀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담에서 놓이는 한 수는 정답이 아니다.
진실에 닿기 위한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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