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준은 현관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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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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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어떤 직업은 일정한 학력을 요구하고, 어떤 조직은 자격이나 경력을 본다.
취업을 하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고, 조직에 들어가면 그곳의 규칙에 적응해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준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맞춰야 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어디까지 들어오느냐에 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과
그 기준으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려면 이 정도의 자격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격이 부족하니 부족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현실의 기준은 나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바뀐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런 영역이 있었다.
특히 학력과 이력에 관한 일이었다.
과거에 이력을 둘러싼 여러 평가를 경험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이력을 내가 살아온 삶의 기록으로 바라보기보다 나를 평가했던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가 오래 남으면서 타인의 시선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기준은 원래 그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면화되는 순간, 나는 그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보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마주할 일이 있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학력, 이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현재의 현실적인 기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함께 떠올랐다.
현재의 말 하나에 과거의 목소리들이 겹쳐 들린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누군가를 고발하듯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잠깐 눈물이 났다.
아마 그때 애도가 일어났던 것 같다.
그동안 상처받았던 나를 바라보고,
그때 정말 아팠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조금 평평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있었다.
내 이력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력은 내가 그때의 조건과 자원 안에서 선택하며 살아온 결과였다.
지금보다 자원이 많지 않았던 시절,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특별한 성공담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특별한 성공담의 주인공일 필요도 없고,
부족한 이력의 피해자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조금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내 삶의 이 부분에서는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들에게 수없이 이야기했던 말이다.
타인의 평가와 자신의 존재를 구분하라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라고.
그런데 정작 내 삶의 한 부분에서는
그 칼의 손잡이를 다른 사람에게 쥐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도록 말이다.
생각해보면 타인의 시선이 나를 흔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며, 때로는 평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린 뒤에도 판단권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
‘내 삶의 주인’이라는 말은 하나의 커다란 범주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작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자기 선택을 분명하게 하면서 살아가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타인의 기준에 흔들릴 수 있다.
일에서는 주인일 수 있지만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주체적이면서도 인정의 문제에서는 쉽게 흔들릴 수도 있다.
삶의 한 영역에서 주인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주인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나는 여기에서는 아직 주인이 아니었구나.’
하고 발견하는 일이 반복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발견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아직 누구에게 열쇠를 맡겨두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열쇠를 하나씩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취업을 해야 한다면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 조직의 문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세상의 기준을 따라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그 기준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는 내 몫이다.
어쩌면 삶에는 현관과 거실과 안방이 있는지도 모른다.
학력과 경력, 직업과 자격은 세상과 만나는 현관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 현관에서 세상의 기준을 만나고, 필요한 만큼 그 기준을 따른다.
하지만 그 기준이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나를 규정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
그곳은 내 삶의 안방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아직 주인이 되지 못했던 내 삶의 한 측면을 만났다.
완전히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한꺼번에 주인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한 영역에서 내가 쥐고 있지 않았던 열쇠를 발견하고,
그 열쇠를 다시 내 손에 가져오는 것.
그리고 다음에는 또 다른 영역에서
‘여기에도 내가 없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렇게 하나씩
내 삶으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내 삶의 안방까지 들어올 필요는 없다.
세상의 기준은 현관까지만.
안방의 열쇠는, 하나씩 내 손으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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