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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의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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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5 19:29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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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하게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센터의 상담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대기실 소파 위에 놓인 검은 기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 기타학원에 가져갈 기타가 든 가방이었다.


센터에는 자연의 색을 담은 작은 오브제들이 여럿 놓여 있다. 

초록과 나무색, 꽃의 색들이 서로 어울리며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마음에 드는 것들인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 안에 조금 붕 떠 있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 사이에 놓인 검은 기타 가방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이상하게 공간이 차분해 보였다.


제법 크고, 아마 센터에 있는 물건 중 가장 긴 것 같았다.


그런데도 튀지 않았다.


처음에는 검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검정은 묵직하고 어두운 색이다. 

옷을 고를 때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정을 선택할 때가 있다. 

그런데 무대에서는 또 다르다. 

다른 색보다 오히려 세련되고 강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만난 검정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기타 가방은 크고 무거워 보였지만, 기타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손잡이와 어깨끈도 있었고, 검은 천 위로 생활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것은 단순히 커다란 검은 물건 하나가 아니었다.


작은 오브제들 사이에 놓인 하나의 생활이었다.


무엇보다 그 가방은 길었다.


센터에서 가장 긴 물건인데도 시선을 가로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길이가 흩어져 있던 공간을 한쪽으로 이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공간을 안정시키는 것이 꼭 작고 가벼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하나의 무게가 있어야 다른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기도 한다는 것을.


검정도 그랬다.


나는 검정을 숨는 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검정은 숨기기만 하는 색이 아니었다.


자기 색을 크게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색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색이었다.


가장 어두운데도 다른 것들을 어둡게 만들지 않았고, 가장 큰데도 다른 것들을 작아 보이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자리에 조용히 있으면서 주변의 것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었다.


생각해보면 어떤 색을 어떻게 느끼는지도 결국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것인지 모른다.


같은 검정이라도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색들 사이에 있을 때가 다르고, 

무대 위에 있을 때와 작은 상담센터의 대기실에 놓여 있을 때가 다르다.


색은 그대로인데 내가 보는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무겁다고 느꼈는데, 다른 자리에서는 그 사람이 오히려 관계를 받쳐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중심이 되어 있기도 한다.


무게가 있다는 것과 공간을 무겁게 만든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기타 가방 하나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가장 길고 가장 어두운 것이
오히려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검정은 숨기기 위한 색만도, 어두움의 색만도 아니었다.


때로는 흩어진 것들을 묶어주고, 가볍게 떠 있던 것들 사이에 중심을 만들어주는 색이었다.


오늘 나는
검정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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