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말에 묻힌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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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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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우리’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아이, 우리 남편, 우리 회사.
‘우리’라는 말에는 관계와 소속감이 담겨 있다.
나와 타인을 연결하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따뜻한 말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 따뜻한 말 안에서 ‘나’라는 주어가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가 되고,
“나는 이것을 원해.”가
“우리는 이것을 원해.”가 된다.
누군가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되고,
누군가의 부담이 ‘우리의 부담’이 되고,
누군가의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라는 말 자체가 아니다.
누구의 생각인지, 누구의 욕구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다.
주어가 사라지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한 일을 내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주어를 없애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한 일을 내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로 흡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같다.
개인의 주어가 관계 속에서 흐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언제나 의도적인 지배나 가로채기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람들은 주어를 쉽게 생략한다.
‘나’와 ‘너’를 구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우리’라고 말하고,
자신의 경험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관계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의사소통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
경험을 ‘나’를 주어로 표현하는 I-message, 즉 나 전달법이라는 방식이 따로 이야기될 정도다.
사람들은 갈등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느꼈어”라고 말하기보다
“너 때문에 그랬어”라고 상대를 규정하거나,
“나는 이것을 원해”라고 말하기보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해”라고 관계 전체를 묶어 말하기 쉽다.
그런데 주어가 사라지면 묘한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몫이 관계의 공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가진 부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명확한 주어 없이 나와 당신 사이에 놓인다.
그러면 그것을 듣는 사람은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된다.
‘그럼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바로 그때 경계등이 켜진다.
“저 사람의 몫이 지금 나와 당신 사이에 던져지고 있다.”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몫을 내가 떠안는 것은 다르다.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과
상대가 말하지 않은 부담까지 내가 먼저 책임지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때때로 주어를 다시 찾아줄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상대에게도 같은 질문을 돌려주는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당신의 몫은 무엇인가.”
이렇게 각자의 주어가 다시 살아나면 관계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나의 몫과 당신의 몫이 구분되고,
그 위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것만 ‘우리’가 된다.
그러니 ‘우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나’를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우리’는
나와 당신이 각자의 주어로 서 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잃은 우리가 아니라,
나도 있고 당신도 있는 우리.
어쩌면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라는 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기 전에
그 안에 있는 ‘나’와 ‘당신’을 잊지 않는 것일 것이다.
주어가 사라지는 순간 경계등이 켜진다.
그 경계등은 관계를 끊으라는 신호가 아니라,
사라진 주어를 다시 찾아오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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