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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 적 없는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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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7 16:47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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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는 때때로 이상한 빚이 생긴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이미 나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었다고 말한다.


나는 서로의 필요가 맞아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시간이 지난 뒤 그것을 자신이 나를 위해 희생한 일로 기억한다.


그렇게 내가 진 적 없는 빚이 생긴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자신이 선택해서 한 일을 나중에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내가 필요해서 한 일,
내가 좋아서 한 일,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


그때에는 분명 나에게도 이유와 이익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이유는 사라지고 내가 상대를 위해 한 행동만 남는다.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 말이 시작되면 관계의 위치가 달라진다.


함께 필요를 주고받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베푼 사람이 되고, 상대는 받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받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의무가 생긴다.


봉사활동을 생각해보면 이 역전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누군가에게 시간과 마음을 들여 봉사한 뒤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받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봉사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뿐 아니라, 

자신이 얻은 의미와 배움, 삶의 에너지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다른 모습도 보인다.

열과 성의를 다해 봉사했는데 아이들이 자신이 기대한 만큼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들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누구라도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서운함이 상대에게 기대가 되는 순간, 무언가가 뒤집힌다.


봉사를 받는 아이들이 봉사자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봉사자가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봉사자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러 갔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봉사자에게 무언가를 돌려주어야 하는 관계가 된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역전이라고 생각한다.


봉사를 받는 사람이 봉사자의 감정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봉사의 의미는 어디에 남을까.


물론 봉사자 역시 사람이다. 

기대하고 서운할 수 있다.


다만 그 감정은 봉사자가 자신의 몫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와 내가 왜 그곳에 갔는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역전이 나타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데에는 분명 많은 수고가 따른다. 

시간과 돈이 들고, 자신의 삶을 조정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모의 선택이기도 하다.


아이의 웃음과 성장, 안겨오는 작은 몸, 

함께 살아가며 생겨나는 사랑과 기쁨은 부모에게도 돌아온다.


그것이 부모의 수고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한 모든 일을 오직 희생으로만 기억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태어나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선택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자녀의 평생 채무로 바꿀 수는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말이 감사와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넘어 자녀의 의무를 만들어내는 순간, 

부모의 선택은 자녀의 채무로 바뀐다.


물론 고마움은 있을 수 있다.


부모의 수고를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마움과 빚은 같은 말이 아니다.


최근 어떤 관계에서 비용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장을 접했다.


“우리는 손해보고 세입자를 우대하는데…”


그 문장을 읽고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면 확인해서 내면 된다.


내가 받은 것이 있다면 고마워하면 된다.


그런데 서로의 필요가 맞아 이루어진 선택이나, 

한쪽에게도 필요와 이익이 있었던 일을 시간이 지난 뒤 

오직 상대를 위한 희생으로만 해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진 적 없는 빚을 갑자기 받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상대가 왜 그렇게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상대가 자신의 선택을 어떤 이름으로 기억한다고 해서 

그 이름까지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선택으로 기억하고,
상대가 선택한 것은 상대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것.


내가 실제로 받은 것은 고맙게 기억하되,
상대가 자신에게도 필요했던 일을 오직 나를 위한 희생으로 

다시 쓰는 순간까지 나의 빚으로 가져오지는 않는 것.


그렇게 해야 관계가 장부가 되지 않는다.


호의는 호의로 남고,
책임은 책임으로 남고,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남는다.


모든 관계에서 빚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받은 것을 알아보는 마음까지 없애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내가 진 적 없는 빚과,
내가 기꺼이 기억하고 싶은 고마움은 구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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