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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게 결정권을 넘기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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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7 17:32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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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현실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를 가져도 될까.
내 형편에 너무 큰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현실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먼저 계산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본 뒤 

현실과 협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정일 수 있다.


현실을 먼저 생각하면 욕구가 생기기도 전에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곧바로 가격이나 위치, 관리비, 출퇴근 거리부터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니라 ‘내가 가질 수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하고 있게 된다.


얼마 전 나는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집을 떠올려보았다.


집에서 십 분 정도 걸으면 호수가 있고, 유럽의 전원주택처럼 아담하고 예쁜 집이 있다. 

정원은 자연스럽지만 아무렇게나 놓여 있지는 않고, 나름의 질서 속에서 가꾸어져 있다. 

그리고 현관에는 흔들의자가 두 개 있고 마당에는 그네가 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상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현실을 먼저 고려하는 습관은 욕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자기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미리 축소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사이즈’를 잘 모를 수도 있다.


내가 어느 정도를 원하는 사람인지, 무엇이 있어야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의 공간과 시간과 관계가 나에게 맞는지 제대로 알아보기 전에 현실에 맞추어 나를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사이즈를 안다는 것은 무조건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사이즈는 머릿속으로만 계산해서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작은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최근 ETF에 아주 적은 금액을 정해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투자해보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금액을 넣는 것만으로도 몸이 긴장했다. 

과거의 경험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긴장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는 투자를 못 하는 사람이야’라고 미리 결론 내리지도 않았다.


작은 금액으로 해보면서 내 몸이 어디까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어느 날은 운전을 하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춘 사이 자연스럽게 매수를 했다.


처음에는 작은 금액을 넣는 것조차 큰일처럼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달라진 것은 투자금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 돈을 대하는 내 몸의 긴장이 달라지고 있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알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기 사이즈를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미리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돼’라고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경험을 통해 내가 실제로 어디까지 가능한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


집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돈도 그렇다.


처음부터 현실에 맞추어 나를 줄여버리면 현실에 맞는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욕구를 충분히 바라본다고 해서 현실을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서가 달라지는 것이다.


먼저 묻는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다음 현실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현실은 나의 욕구를 심사하는 판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과 함께 조정해가야 할 조건일 수도 있다.


나는 현실을 무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축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아본 뒤 현실과 협상하는 것.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내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무엇이 나에게 충분한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정말 나의 크기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에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나를 맞추는 능력만이 아니라,


현실에게 결정권을 넘기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욕구에게 먼저 발언권을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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