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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이 정리되니 밖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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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09 17:26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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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불안할수록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살아갈 때가 있다.


작은 일이 생겨도 최악을 먼저 상정한다.


혹시 문제가 커지면 어떡하지, 나중에 더 곤란해지면 어떡하지,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최악을 상정하는 마음을 단순히 부정적인 사고라고만 볼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해두면 준비할 수 있고, 실제 결과가 그보다 나으면 안도할 수 있다. 

불확실성을 견디고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또 최악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악을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가 아닌 것 같다.


최악을 보는 것과 최악까지 가는 것은 다르다.


최악을 볼 수는 있다.


“이 일이 잘못되면 여기까지 갈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이렇게 돌아오려면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내면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 힘이라기보다, 흔들린 뒤에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다.


최근 작은 일을 미룬 경험이 있었다.


센터에서 나온 종이류를 거주지에 버리려고 재활용품이 담긴 통을 차에 싣고 갔다. 

그런데 집에 거의 도착해서야 통을 차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다시 돌아갔거나, 다음 날 아침 일찍 버리려고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을 놓쳤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아, 두고 왔네. 내일 버리면 되지.’


그런데 다음 날에는 그 휴지통을 센터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예전 같으면 다시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럼 큰 비닐에 담아서 차에 두면 되지. 일주일 뒤에 버리면 되고.’


나도 조금 놀랐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해야 할 일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내가 그 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날 귀찮아하는 내 마음을 그냥 받아들였다.


‘오늘은 돌아가기 싫다.’


그 마음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지’라고 나를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생각이 막히지 않았다.


내일 하면 되고,
내일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조금 더 뒤에 하면 된다.


대안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어쩌면 대부분의 일에는 대안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음이 긴장하고 있으면 그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지금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붙잡히면 사고의 길도 하나로 좁아진다.


반대로 내 마음을 수용하면 긴장이 조금 풀린다.


‘나는 지금 귀찮다.’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비로소 현실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때부터 다른 길이 보인다.


내 마음을 수용한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마음과 현실을 함께 고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안이 소란스러울 때는 밖도 번잡하게 느껴진다.


작은 일이 하나 생기면 그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놓치면 안 되는 일, 지금 해결해야 하는 일, 

혹시 더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하나의 일이 여러 개의 일이 된다.


실제 바깥의 상황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소음이 더 커지는 것이다.


반대로 내 안이 정리되면 같은 현실도 다르게 보인다.


일은 여전히 있고, 해야 할 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늘은 못 하겠네. 그러면 내일 하지.”
“내일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이 있지.”


문제는 그대로인데 마음은 번잡하지 않다.


그래서 요즘 내가 경험하는 변화는 바깥의 일이 줄어든 것이 아닌 것 같다.


내 안이 정리되니 밖이 조용해졌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당장 반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악을 볼 수 있지만 최악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문제가 생겨도 그때 다시 보면 되었고, 한 가지 방법이 막히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었다.


어쩌면 내면의 중심이란 모든 일을 미리 해결해놓는 힘이 아니라,


“그때 가서도 나는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방법이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 마음도 함께 고려해도 된다.”


라고 믿을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삶은 조금 느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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