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생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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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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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새는 몸에 털이 나고 날개를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둥지를 떠난다.
어미 새에게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새끼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어느 순간 자기 삶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런데 사람에게 날개가 생기는 모습은 새처럼 단순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집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자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밥을 먹거나 자기 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기대하는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자기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
모양은 다르지만 그 안에는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이제 나는 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의 날개가 대부분 관계 속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거리 두기로 느낄 수 있고,
자기 선택을 하는 행동을 거절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와 밥을 먹지 않는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삶으로 가는 것과 누군가를 거절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그저 이제야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일 뿐이다.
사람은 이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렇다.
내가 상대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상대의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데도 두 가지가 쉽게 뒤섞인다.
그래서 자기 삶으로 가려는 사람은 관계에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오해가 너무 무거우면 다시 주저앉기도 한다.
내가 나답게 행동하면 누군가가 서운해한다.
내 욕구를 말하면 누군가가 상처받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누군가가 나를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 다시 역할 속으로 들어간다.
좋은 아들, 좋은 딸,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책임지는 사람,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역할은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지만, 때로는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일을 대신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상대에게 날개가 생기는 순간을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새끼 새가 날아간다고 해서 둥지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자랐기 때문에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 그 사람이
자기 삶으로 가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사람에게 날개가 생기는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그것을 거절로 오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때,
관계는 한 사람의 삶을 붙잡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는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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