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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가 생겨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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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3 12:53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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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말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중도(中道), 중간, 중화.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중간은 양쪽의 가운데에 있는 위치에 가깝다.
10과 100 사이의 55처럼, 양쪽 끝 사이에 놓인 지점이다.


중화는 서로 다른 것이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평형을 이루는 상태에 가깝다.


그렇다면 중도는 단순히 그 가운데에 서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느 한쪽의 극단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상황과 자신을 함께 살피며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나에게 중도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개념이었다.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도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중도를 향해 가려고 했다.


감정을 잘 조절하려 했고,
적절한 선을 지키려 했고,
너무 애쓰지도, 너무 놓아버리지도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는 오히려 중도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중도를 향해 가려고 애쓰는 마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조절해야 한다는 마음,
적절해야 한다는 마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마음.


그 안에는 여전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의식아카이브를 지나면서부터 조금 달라졌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것을 들여다보았고,
억눌렀던 것을 꺼내어 표현하기도 했다.


때로는 너무 많이 말했고,
때로는 너무 많이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다시 적절한 수준으로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그때의 나를 경험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할 수 있지만 꼭 말하지 않아도 되고,
드러낼 수 있지만 모두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나를 쏟아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관계를 보면서도 나를 볼 수 있고,
나를 보면서도 현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중도를 향해 가려고 애쓰던 시기에는 오히려 중도에 있지 않았고,
중도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삶을 따라간 지금에서야 중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


내가 경험한 것은 ‘중간’이 아니었다.


양쪽의 가운데에 적당히 머무는 것도 아니었고,
두 극단을 절충해서 적당한 지점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억누름도 지나가고,
쏟아냄도 지나가고,
그 양쪽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서야
그 사이에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의 중도는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나를 느끼면서도 현실을 함께 보는 것,
그때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목적지가 아니었다.


찾아가려고 애쓴 곳도 아니었다.


그저 내 삶을 따라 여기까지 오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쩌면 중도는
가운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살아낸 뒤
내 안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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