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문법과 위계의 문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사람 사이에는 하나의 문법만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의 문법이 있고, 위계의 문법이 있다.
직장에서는 비교적 분명하다.
상급자와 하급자, 고용주와 직원처럼 관계의 위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먼저 인사하고,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갖추는 것은 위계의 언어로 자연스럽다.
사적인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동등한 관계라면 먼저 인사했다고 내가 아래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건넨 인사는 관계를 시작하거나 확인하는 행동이고, 상대는 그것을 상호성으로 돌려주면 된다.
문제는 두 언어가 모호하게 섞이는 곳에서 생긴다.
어릴 때는 어른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하라고 배웠다.
작은 동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어른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의 인사는 위계를 확인하는 일이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넓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먼저 인사했다고 해서 상대가 나보다 높은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전히 ‘어른에게 먼저 인사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어른이라면 젊은 사람에게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범으로 살아간다.
같은 인사 하나가 서로 다른 의미로 읽힌다.
나는 관계를 건넸는데 상대는 위계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인사했는데,
상대는 “저 사람이 나를 윗사람으로 인정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먼저 인사한 사람이 오히려 불편해진다.
관계를 만들려고 내민 행동이 자신을 낮은 자리에 놓는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것은 가족처럼 이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는 경우다.
한 사람은 가족을 위계의 문법으로 대하고, 다른 사람들은 관계의 문법으로 대한다.
한 사람에게는 “내가 부모니까”, “내가 어른이니까”가 관계의 근거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니까”가 관계의 근거가 된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위계의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관계의 문법은 버릇없음이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고,
관계의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위계의 문법은 사랑이 없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관계라면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같은 일상을 반복해서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두 문법의 차이는 어느 순간 미움이 되기도 한다.
또 관계의 문법만 익숙한 사람은 위계의 문법만 사용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삐끗거리기도 한다.
내가 먼저 배려하면 상대도 배려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관계를 건네면 관계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상대는 내가 먼저 한 행동을 양보나 복종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때 사람은 생각한다.
‘나는 그냥 사람답게 대했을 뿐인데, 왜 내가 손해를 보고 있지?’
그래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문법과 위계의 문법 중 어느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두 언어가 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위계의 문법을 사용할 수 있고, 사적인 관계에서는 관계의 문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모호한 공간에서는 지금 어떤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관계의 문법을 아는 사람끼리는 오히려 편하다.
내가 먼저 인사해도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먼저 인사해도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관계를 건넸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상호성으로 돌려준다.
두 문법을 모두 알게 된다는 것은 모든 관계를 계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어떤 관계에서는 위계가 작동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관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에
매번 나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의 관계 문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문법과 위계의 문법은 함께 돌아간다.
어쩌면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한 문법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누구와 어떤 문법으로 만나고 있는지를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