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걸어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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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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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면서 나는 한 사람을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가로축은 시간이다.
과거의 경험과 발달의 과정이 현재의 나에게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본다.
세로축은 깊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관계와 사건을 따라가며, 그 아래에 있는 감정과 욕구, 내면의 층위로 내려간다.
나는 강의에서 내가 이 두 축을 함께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한 능력이었지만, 아직은 개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에베레스트 산을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등반해보는 것의 차이처럼.
나는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에서 길이 갈라지는지, 어디가 가파른지, 어디에서 사람이 길을 잃는지 알고 있었다.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한 조각씩 꺼내놓을 때면, 그 조각이 지도의 어디쯤 놓여 있는지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를 아는 것과 그 산을 직접 걸어본 것은 달랐다.
내 삶의 지층에는 몇 개의 큰 구멍이 있었다.
그곳으로 자신감과 에너지가 빠져나갔고, 그래서 지상에 서 있으면서도 어딘가 위태로웠다.
현실에 집중하면 내면의 지층으로 빠질 것 같았고,
지층으로 깊이 들어가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있었다.
나는 지층과 지상을 모두 볼 수 있었지만,
그 사이를 안전하게 오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몇 개의 구멍을 발견했고, 하나씩 막아왔다.
마치 내 안의 오래된 집을 청소하고 온 것처럼.
이후 그 자리에 새로운 감각이 생겼다.
이제는 지상에 집중해도 지층으로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지층으로 깊이 들어가도 다시 올라오는 길을 안다.
어디에 있든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내가 경험한 새로운 안정감이다.
한 내담자는 상담을 받기 전 우울이 찾아오면 그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약을 먹고 몸을 움직이며 그 느낌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이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우울이 ‘내 것이 아닌 것’이었다면, 이제는 적어도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담자는 자신이 발견한 작은 조각을 이야기한다.
상담자는 그 조각이 놓인 지도의 위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지도를 단지 머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내 지층으로 내려가 보았고,
그곳에서 길을 잃어보았고,
구멍을 발견했고,
다시 올라오는 길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이제 내담자가 자기 지층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단순한 개념으로만 듣지 않는다.
‘아, 이 사람이 지금 이 산의 어느 지점에 와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지도와 경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도를 가진 사람은 길을 설명할 수 있다.
산을 걸어본 사람은 길을 걸어본 몸으로 그곳을 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그 둘이 만나는 곳인지도 모른다.
지층을 잃지 않으면서 지상을 살아가는 것.
필요하면 내려갈 수 있고, 필요하면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것.
이제 나는 지층에 머물러야만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상을 살아간다고 해서 내 지층을 잃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지상을 바라본다.
산을 다녀온 사람이 산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산을 걸어본 사람이 이제 평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나는 이제 지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도를 걸어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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