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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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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06 19:45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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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강을 건너는 길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돌은 하나같이 모양이 달랐다. 

어떤 돌은 넓고 평평했지만 어떤 돌은 작고 미끄러웠다. 

돌과 돌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았다. 

강가 쪽은 물살이 약했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물은 깊어지고 물살은 거세졌다. 

그래서 큰 돌이 필요한 곳도 있었고, 건너는 동안 물의 흐름을 살피며 발을 옮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강은 어린 시절의 작은 모험이면서, 

어쩌면 삶을 미리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삶도 늘 같은 깊이로 흐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발목 정도의 물처럼 가볍게 지나가지만, 

어떤 날은 어디까지 발이 닿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어진다. 

물살이 약한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나를 밀어내는 듯한 시기도 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언제나 잔잔하기를 바라는 일이 아니다. 

지금 물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평온한 때에는 평온한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지만, 

거센 시기를 만났을 때는 힘을 더 주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디가 깊은지, 어디에서 물살이 세지는지 살피고, 지금 내가 딛을 수 있는 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징검다리가 없는 곳에서는 돌을 직접 놓기도 했다.


하나를 놓고, 그 돌을 밟고, 다시 다음 돌을 찾아 놓았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길을 만들어 다른 편으로 건너갔다.


돌이켜보면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많았다. 

이미 길이 놓여 있는 곳에서는 그 길을 따라가면 되지만,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순간에는 내가 직접 다음 발판을 만들어야 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도 일단 하나를 결정하고, 그 위에 발을 딛은 뒤 다음 것을 생각해야 했다.


삶의 길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잘 건너기도 했지만 물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 돌 사이의 폭이 넓고 물살이 센 곳을 뛰어넘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뛰기 직전의 망설임, 몸을 날리는 순간의 긴장, 

발이 돌 위에 닿았을 때의 안도감과 해냈다는 기쁨까지 지금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런데 삶에서도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늘 비슷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다음 돌이 너무 멀어 보일 때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뛰지 않으면 건널 수 없고, 뛰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성공도 경험하고 실패도 경험한다. 

어떤 선택은 정확하게 다음 돌에 발을 올려놓게 해주지만, 어떤 선택은 물속으로 나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물에 빠졌다는 것이 반드시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오면 된다.


경험해보지 못한 깊은 강에 빠졌을 때는 징검다리를 찾을 겨를도 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 순간에는 강을 건넌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전부다.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던 일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깊이의 어려움 앞에서는 모든 판단이 흐려지고 그저 버티는 것밖에는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강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묘한 일이 생긴다.


조금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강처럼 느껴졌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나의 강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징검다리를 만나면 돌 하나를 딛고 다음 돌로 건너가는 일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다만 달라진 것은 강이 아니라 나다.


깊은 물을 경험해본 사람은 다음에 조금 깊은 물을 만나도 예전처럼 쉽게 당황하지 않는다. 

물살을 보고, 깊이를 가늠하고, 어디로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경험이 사람을 담대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어려움이 적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번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이다. 

물에 빠져도 보았고, 다시 올라와 보기도 했고, 

멀리 떨어진 돌을 뛰어넘어 보기도 했고, 징검다리가 없는 곳에 직접 돌을 놓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알게 된다.


“이것도 지나가겠구나.”


물살은 아무리 거세도 계속 같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돌을 휘감으며 흐르던 물도 결국 돌을 지나 흘러간다. 

우리가 힘겨워했던 시절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지만, 지나고 나면 어느새 뒤에 놓인 돌 하나가 되어 있다.


어쩌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이런 강의 모습과 닮았다.


물이 흐르는 동안에는 그 물살 속에 내가 갇힌 것처럼 느껴지지만, 

강을 빠져나와 뒤돌아보면 알게 된다.


물은 지나갔고, 나는 건너왔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의 공원이나 강에서 반듯하게 다듬어진 징검다리를 보았다. 

돌의 모양도 일정하고 간격도 고르고 물살도 거의 같았다. 

편리하고 안전한 징검다리였지만 한동안은 오히려 어색했다.


내가 알던 징검다리는 강을 읽어야 건널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살이 약한 곳과 센 곳을 살피고, 깊이를 가늠하고, 

어느 돌을 밟을지 선택해야 했다. 

빠지면 다시 올라와야 했고, 징검다리가 없으면 직접 돌을 놓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도시의 반듯한 징검다리가 낯설었던 것은, 

어쩌면 삶도 그렇게 반듯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길은 일정한 간격으로 돌이 놓인 길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돌이 너무 멀었고, 어떤 때는 돌이 흔들렸고, 어떤 때는 아예 돌이 없었다. 물살도 늘 달랐다.


그런 불규칙함 속에서 우리는 건너는 법을 배웠다.


돌이 놓여 있어도 물은 돌을 휘감으며 흘렀다. 

돌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물은 늘 달랐다. 물의 깊이도, 물살도, 맑기도 달랐다.


그 모습이 삶과 닮았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은 어느 정도 그대로인데, 그 주변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같은 직장, 같은 가족, 같은 사람, 같은 하루라도 그날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강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삶은 돌만 잘 밟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돌과 함께 흐르는 물을 읽어야 한다.


어떤 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어떤 때는 잠시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작은 돌을 밟아도 되지만, 어떤 때는 더 크고 단단한 발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지금까지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 돌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 주 한 주를 건넌다.

물살이 약한 주도 있고 센 주도 있다.
쉽게 건너는 주도 있고, 한참을 망설이는 주도 있다.
무사히 건너는 주도 있고, 중간에 물에 빠지는 주도 있다.

하지만 주말이 오면 알게 된다.


이번 주도 건너왔구나.


한 주라는 강을 건너고, 또 한 주라는 강을 건너다 보면 한 달이 된다. 

그렇게 열두 번의 강을 건너면 한 해가 된다. 

해마다 새로운 강을 건너다 보면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내가 건너온 징검다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처음 건넜던 강의 돌부터, 지금까지 밟아온 수많은 돌이 뒤에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돌들에는 성공했던 순간도 있고, 물에 빠졌던 순간도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던 돌도 있고, 도저히 건너지 못할 것 같아 한참을 서 있었던 돌도 있다.


그 모든 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평온해지는 것은 아닐까.


삶이 쉬워져서가 아니라, 이미 많은 강을 건너왔기 때문에.


젊을 때의 자신감이
‘나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면,


세월을 건너온 사람의 자신감은
‘잘하지 못해도 결국 건너겠지’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강이 깊어도 빠져나와 본 사람이 있고,
물살이 세도 건너본 사람이 있고,
길이 없어도 돌을 놓아본 사람이 있다.


그러니 다음 강 앞에서 조금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건너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물살이 세면 더 조심하면 되고,
돌이 멀면 뛰면 되고,
돌이 없으면 하나 놓으면 된다.


혹시 물에 빠지더라도 다시 물 밖으로 나오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면
그 강 역시 내가 건너온 수많은 강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을 만나면 건너고,
돌이 없으면 돌을 놓고,
물에 빠지면 다시 올라오고,
다시 징검다리를 찾아 한 발씩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강을 건너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나는 생각보다 많은 강을 건너왔구나.
그러니 이번 강도, 결국 건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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