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전략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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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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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을 만든다.
누군가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좋은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누구보다 유능해지며,
누군가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참고 견딘다.
한때 자신을 지켜주었던 방식이기에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생존을 위해 익힌 방식이
어른이 된 후에도 관계의 방식으로 남을 때 시작된다.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자신의 존재보다 역할을 앞세우게 된다.
상대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먼저 찾기도 한다.
상대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자신의 역할을 흔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유능함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좋은 정보와 더 나은 방법을 알려주고,
상대가 선택한 것을 평가하고 고쳐주면서
‘알고 있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 ‘필요한 사람’의 자리에 머문다.
그에게는 배려와 도움이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받는 사람에게는
‘나는 늘 부족하다’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상대의 선택을 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했어?”
“그것보다 이게 낫지 않을까?”
이 말들 뒤에는 상대를 낮추려는 의도보다
자신이 알고 있어야 안전하고,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오래된 생존의 감각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존을 지켜주었던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생존전략은 반드시 나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맞추는 것,
도와주는 것,
책임지는 것,
해결해주는 것,
더 나은 것을 알려주는 것.
모두 좋은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의 의도가 아니라
그 행동이 관계 안에서 상대를 어떤 자리에 놓는가이다.
내가 늘 맞추는 사람이 되면
상대는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일마저 눈치 보게 될 수 있다.
내가 늘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상대는 스스로 책임질 기회를 잃을 수 있고,
내가 늘 해결해주는 사람이라면
상대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자리를 잃을 수 있다.
내가 유능함으로 존재한다면
누군가는 내 곁에서 계속 부족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상대의 선택을 고쳐주며 안심한다면
상대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관계에서 생존전략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갈등을 없애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갈등이 있더라도
내가 나를 관계 안에 가져오는 일에 가깝다.
“나는 이게 싫어.”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
“나는 네 말에 서운했어.”
이렇게 나를 드러내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관계는
한 사람이 맞추는 관계에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조율하는 관계로 바뀔 수 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가 나를 지우면
관계는 평온해질 수 있지만, 서로를 만날 수는 없다.
반대로 갈등이 있더라도 내가 나를 드러낼 때
비로소 상대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생존전략은 나를 살려준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관계의 방식이 되는 순간,
내가 살아남기 위해 사용했던 힘을
다른 사람이 대신 감당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생존전략의 가장 아픈 비용인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인데,
그 방식으로 살아남은 자리에서
누군가는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관계의 회복은
내가 더 이상 상대에게 맞추지 않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나로 존재하고
너도 너로 존재할 수 있도록
관계의 자리를 다시 만드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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