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마음으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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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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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운동을 하면서 평소 사용하지 않던 등 근육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평소 의자에 주로 앉아 있는 직업의 특성상 등 근육은 물론이고 어깨와 날개뼈 주변에도 긴장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필라테스 강사가 알려준 한 가지 동작이 등 근육을 풀어주는 데 매우 유익했다.
목을 직접 움직이는 대신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려 목을 없애듯 했다가, 다시 툭 내려놓으며 목이 생기는 듯한 동작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반복해서 움직이다 보니 평소와는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내가 알고 있던 목 운동은 목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목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어깨를 움직이는 것이 내 몸에는 더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국민체조를 하면서부터 목을 돌리는 것이 목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알고 있었고,
요가나 PT에서도 손으로 귀를 잡고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는 운동을 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새로운 동작이 낯설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해보니 이전에 해오던 동작과는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는 재미있는 순서가 있었다.
알고 있던 방법 → 새로운 방법 → 긴가민가함 → 직접 경험함 → 몸의 변화 → 납득함.
나는 이 경험을 상담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해 생각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인지를 주된 생존 방식으로 사용해온 사람에게 ‘감정을 느껴보세요’라는 말은 어쩌면
내가 처음 새로운 목 운동을 들었을 때와 비슷하게 낯설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온 중요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생각하고, 이유를 찾고,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면 조금 더 안전해진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경험하기보다 먼저 분석하고 설명한다.
상담실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아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지만 정작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상담이 끝난 뒤 집에 가서 울거나, 귀가하는 길에 눈물이 났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담실에서는 생각이 먼저 작동하고, 안전한 공간을 벗어난 뒤에야 감정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 단순히 “생각하지 말고 감정을 느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어떻게 느끼라는 거지?’
‘무슨 감정인지 생각해봐야 하나?’
‘내가 지금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건가?’
이렇게 다시 머리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인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지에서 마음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경험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은 아주 짧은 단계로 시작할 수 있다.
사건을 설명한다.
→ 지금 몸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알아차린다.
→ 그 감각을 바로 해석하지 않고 잠시 둔다.
→ 그 느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언어가 된다.
→ 말하거나 울거나 표현한다.
→ 그리고 몸과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을 경험한다.
여기서 ‘마음의 방향’은 결국 욕구와 연결된다.
서운함 속에는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고,
분노 속에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감정을 정확한 이름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사람도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감정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반면 감정의 의미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왜 나는 이렇게 느끼는가’,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서를 충분히 경험한 뒤에 이루어져도 된다.
너무 빨리 의미를 찾으면 다시 머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지화가 강한 사람에게는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라고 요구하기보다,
몸에서 시작해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긴가민가함’도 자연스러운 단계로 포함되어야 한다.
나 역시 새로운 목 운동을 처음 했을 때 그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운동이 있으니 새로운 방법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해보고 몸에서 시원함을 느끼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주지화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부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
한번 경험해보고, 그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살펴보면 된다.
상담실에서 울고 난 뒤 “시원해졌어요”, “두통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하는 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울어서 해소된 것이 아니라, ‘감정을 경험해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생각하고 분석하는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온 방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없애려고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능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에게 느끼는 나를 하나 더 허용하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도 처음에는 낯선 동작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반복하면서 몸이 스스로 ‘이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은 생각을 버리고 뛰어가는 길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해도 괜찮다.
감정의 이름을 바로 찾지 못해도 괜찮다.
울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잠시 생각을 멈추려고 애쓰기보다, 지금 몸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바라보고,
그 느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씩 따라가 보는 것.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고, 눈물이 나고, 한숨이 나오고,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아, 이런 것이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어쩌면 상담은 바로 그 순간까지 내담자와 함께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은, 생각을 버리는 길이 아니라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나를 조금씩 경험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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