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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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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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매일 먹는다.
그리고 소화한다.
먹은 음식이 몸 안에 들어오면 필요한 것은 흡수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 단순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마음도 매일 무언가를 먹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먹고, 표정을 먹고, 관계에서 일어난 일을 먹는다.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먹고, 뜻밖의 친절도 먹는다.
때로는 억울함과 서운함, 분노와 슬픔까지 삼킨다.
그런데 마음으로 들어온 모든 것이 잘 소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화를 낼 수 없었던 일,
서운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일,
너무 두려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일.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도 모른 채 지나온 일들.
그렇게 삼킨 것들이 마음 어딘가에 걸려 있을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정서적인 체증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실에서는 그 체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천천히 찾아간다.
처음에는 무엇이 막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감정의 이름을 찾아본다.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조금 더 내려가면 그때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원했지만 얻지 못했는지가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경험 속에서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참아야 하는 사람이야.”
“나는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사람이야.”
오래 살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자기이미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담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해보게 한다.
어떤 사람은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어떤 사람은 눈물부터 쏟는다.
어떤 사람은 주눅 든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한다.
어떤 사람은 오래 참았던 분노를 담아 큰 소리로 외친다.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느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그때 정말 화가 났구나.”
때로는 그 말을 따라 해보게 한다.
어느 정도 자기 말이 생기면 빈 곳만 살짝 채워준다.
그렇게 하나의 발판을 놓고, 또 하나의 발판을 놓는다.
감정을 만나기 위한 발판,
감정의 방향을 찾기 위한 발판,
그 아래의 욕구를 만나기 위한 발판,
그리고 오래된 자기이미지를 바라보기 위한 발판.
상담자는 내담자를 대신 건너가 줄 수 없다.
다만 혼자서는 건너기 어려운 곳에 잠시 발판을 놓아줄 수 있을 뿐이다.
얼마 전 한 내담자가 감정을 충분히 만나고 표현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치 모세혈관으로 뭔가가 다 빠져나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마음의 소화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에는 가슴에 막혀 있던 것이 조금씩 내려가고,
배까지 내려가고, 마침내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경험.
그 내담자는 오랫동안 상담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작은 도움만 주어도 자기 안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스스로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화기관이 약해졌을 때 처음부터 단단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죽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다시 평소의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작은 감정 하나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을 만나고, 오래된 상처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다.
내가 이제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진 것이 아니다.
느끼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운하면 서운한 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 줄 알고,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고,
필요하면 말하고,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은 흘려보낼 수 있게 되는 것.
어쩌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무언가를 먹듯이 매일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내 안에서 소화하고,
필요한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은 흘려보내는 것.
상담은 그 과정을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필요한 곳에 발판을 놓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은 더 이상 발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자신의 마음을 건너갈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상담자는 조금 뒤로 물러서도 된다.
마음이 스스로 소화할 수 있게 된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것이 상담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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