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와 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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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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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작은 나와 큰 나가 함께 있는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배우는 사람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 책임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리를 자연스럽게 오가기보다 어느 한쪽을 나의 모습으로 붙잡으려 한다.
나이가 많으면 큰 사람이어야 하고, 학력이 높으면 많이 알아야 하고, 직급이 높으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이가 어리거나 신입이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위치에 있으면 내가 작아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와 역할은 같은 것이 아니다.
나이는 많은데 신입일 수 있고, 학력은 높은데 처음 배우는 일 앞에서는 초보일 수 있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 순간도 있다.
오래전 한 강연에서 ‘따르는 사람이 되어본 사람이 이끄는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로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큰 나와 작은 나를 모두 경험해야 한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본 사람은 이끄는 사람의 자리에서도 뒤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자리에 서본 경험이 있다면, 배우는 사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어쩌면 우리를 계속 서로 다른 자리에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작은 나와 큰 나를 모두 살아보았다.
한때는 가정 안에서 주로 의존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내가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감당하던 것들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때 나는 큰 나를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은 나였던 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나도 나였고,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 책임지는 나도 나였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다.
이미 오랫동안 마음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학문에서 만나는 내용이 모두 낯선 것은 아니었다.
경험으로 알고 있던 것들에 학문적인 이름과 언어가 붙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런데 수련의 자리에서는 나는 배우는 사람이었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
그 사이에 서 있는 것이 때로는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자리도 필요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큰 사람도 작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작은 역할을 맡는다고 사람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TV에서 높은 직급으로 일했던 사람이 퇴직 후 이전보다 낮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회는 그것을 내려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급이 내려간 것이지 사람이 작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을 직급과 분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에게 크기를 매긴다.
나이, 학력, 직급, 소득, 경력, 몸값.
어떤 사람은 ‘몸값이 더 높은 사람이 형’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사람의 크기를 무엇으로 재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몸값이 높으면 큰 사람이고 낮으면 작은 사람이다.
그런데 몸값이 낮아지면 사람이 작아지는 것일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운다고 내가 작아지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부탁한다고 내가 작아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작은 자리에 서는 것과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큰 자리에 서는 것과 큰 사람이 되는 것도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것은 어쩌면 작은 내가 아니라, 사람의 크기를 끊임없이 재고 있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붙인 크기뿐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붙인 크기에서도 벗어나는 것.
‘나는 이 나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해.’
‘나는 이 정도를 알고 있으니까 모르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배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은 나에게 하나의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나의 전부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이름은 나를 설명할 뿐 나를 결정하지 않는다.
형이라는 이름도, 신입이라는 이름도, 박사라는 이름도, 교사라는 이름도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가르치는 위치에 놓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언제나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그 말에서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고 있는지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이 ‘아직 모른다’는 작은 여백이 필요한 것 같다.
보되 규정하지 않는 것.
알아차리되 붙잡지 않는 것.
한 모습을 보되 그것으로 사람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 것.
이것은 타인에게만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 작은 자리에 있을 수 있고, 큰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
오늘은 배우는 사람이고 내일은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고 내일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작은 나와 큰 나는 고정된 내가 아니라 삶 속에서 오가는 나인지도 모른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큰 사람이 되는 것도, 작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큰 자리에 있으면서도 작은 나를 잃지 않는 것.
작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큰 나를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마침내는 그 어느 쪽도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나는 큰 나도 살아보았고, 작은 나도 살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나도 나였고, 큰 나도 나였다.
다만 이제는 어느 자리의 크기가 나의 크기라고 믿지 않으려 한다.
사람은 자리가 커서 큰 것이 아니고, 자리가 작아서 작은 것도 아니니까.
어쩌면 자유란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음에 더 이상 나를 맡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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