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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을 만들어 지키는 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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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31 17:40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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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폭력이 이미 일어난 뒤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그 일이 이후에 어떻게 다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한 가족의 문제가 단순히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달리하며 다음 세대의 관계 속에서도 반복되는 경우를 만난다. 

그런데 그 반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력 자체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까지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린 시절 가까운 가족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사람이 있다. 

자신이 직접 폭력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그 장면을 통해 관계의 힘의 구조를 배운다.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참아야 하는지, 갈등이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는지, 

그리고 폭력이 일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느 편에 서는지를 보면서 관계의 언어를 익힌다.


이후 성장하면서 학교나 친밀한 관계에서도 공격과 폭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것은 폭력의 반복보다 폭력 이후의 반복이다.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주변에서 돌아오는 것이 위로나 보호가 아니라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라는 말일 수 있다.


가해자의 행동보다 피해자의 행동을 먼저 문제 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고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가해자를 보호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자신을 보호하고 집단의 결속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힘 있는 사람에게 맞서는 것은 어렵다. 

가족이나 조직 안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의 잘못을 인정하면 갈등이 생기고, 기존의 관계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상황은 단순해진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이 말 한마디로 가해자의 책임은 줄어들고, 나머지 사람들은 같은 편에 설 수 있다.


한 사람을 문제의 원인으로 만들면 집단은 다시 하나가 된다.


이때 ‘희생양’이 만들어진다.


희생양은 반드시 가장 잘못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집단이 자신의 불안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책임을 떠넘기기 쉬운 사람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희생양을 만드는 사람 역시 과거에는 희생양이었을 가능성이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네가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네가 참았어야 했다”, 

“네가 잘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그렇게 해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배운 관계의 규칙이었을지도 모른다.


힘 있는 사람에게 맞서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잘못했는지부터 돌아본다.


가족을 위해 참는다.


갈등이 생기면 약한 사람이 양보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규칙을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맞은 거야.”


그 말은 어쩌면 아이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남았으니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희생양의 역할은 세대를 넘어 뒤집힐 수 있다.


어제의 희생양이 오늘은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어제 가해자의 눈치를 보던 사람이 오늘은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집단의 질서를 지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폭력만 세대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 맞서지 않고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관계의 방식이 세대전수될 수 있다.


폭력영화를 보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종종 만난다. 

누군가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충성을 보여줘.”라고 말하고, 상대에게 다른 사람을 공격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함께 저지른 사람에게 비로소 ‘한배를 탄 사람’이라는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가족이나 일상의 집단을 폭력조직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을 함께 배제하거나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결속을 확인하는 심리적 구조​는 닮아 있을 수 있다.


“저 사람이 문제야.”

“우리는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

“우리는 같은 편이야.”


누군가를 공동의 문제로 만들면 집단 내부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집단의 결속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한때 내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 선 사람들이 나 하나를 규칙을 위반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험을 했다. 

당시에는 왜 사람들이 가해자의 편에 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들이 가해자를 옳다고 생각해서만 그랬던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순간, 집단 내부의 갈등이 정리되고 서로의 결속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그래서 진실보다 관계의 안정을 선택하고, 정의보다 갈등의 회피를 선택하며, 

힘 있는 사람에게 맞서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을 희생시키면 집단은 다시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 편안함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고립과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사건이 끝났다고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위협적인 관계를 경험한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흔적이 남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몸이 긴장하거나, 

주변을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몸이 먼저 긴장하는 것처럼, 

반복적인 위협을 경험한 사람은 실제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몸이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을 단순히 성격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반복된 폭력과 위협의 경험이 사람에 대한 경계와 신체적인 긴장으로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폭력의 흔적은 폭력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는다.


사람을 믿기 어렵게 만들고, 관계를 두려워하게 만들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범위를 좁힐 수도 있다.


그래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폭력 이후 누군가가 어떤 자리에 서주는가인지도 모른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야.”

“나는 네 편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같은 사건이라도 그 이후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상처를 만든 사건은 이미 지나갔더라도, 

그 사건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이후의 관계 속에서 다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해자가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환경에서는 사건은 끝났어도 마음속에서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회복의 시작은 아주 단순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보호받을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확인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오랫동안 왜곡되어온 경험의 의미를 다시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유지되는 결속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평온은 한 사람의 침묵과 고립을 대가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반대로 건강한 결속은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에게 맞설 수 있고, 약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으며, 

잘못한 사람의 책임을 약한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어쩌면 건강한 가족과 집단을 만드는 것은 누구를 우리 편으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함께 있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세대전수를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력을 멈추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당했던 방식으로 다음 사람을 대하지 않는 것.


내가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나를 보호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제는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


그때 비로소 희생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결속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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