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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당나귀는 내가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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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01 11:49 조회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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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한 마리를 데리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당나귀가 있는데 왜 둘 다 걸어가시오?”


그래서 아들이 당나귀를 탔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젊은 아들은 편하게 타고 가면서 늙은 아버지는 걷게 하다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당나귀를 탔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버지는 타고 가면서 젊은 아들은 걷게 하다니.”


결국 두 사람 모두 당나귀를 타게 되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은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니 결국 두 사람은 당나귀를 메고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우화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며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웃음이 났다.


‘어? 나도 이랬네.’


나는 나름대로 신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을 할 때도 내 방식이 있고, 사람을 대할 때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상담실의 쇼파를 바꾼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내담자가 왔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기존 의자가 조금 딱딱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겸사겸사 의자를 좀 더 푹신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사람이 와서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오히려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기존의 약간 딱딱한 의자로 바꾸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와서는 가죽 의자가 좋다고 했다.


그때 당나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거 참, 사람마다 원하는 의자가 다른데 나는 계속 의자를 바꾸고 있었구나.’


물론 한 사람의 불편을 듣고 의자를 바꾸는 것은 배려다. 

문제는 배려가 아니라 누군가의 말이 들릴 때마다 그것을 내가 반드시 바꾸어야 할 이유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상담 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원래 내담자의 사정을 듣고 가능한 범위에서 일정을 조율하는 편이었다. 

서로 맞출 수 있으면 맞추고, 안 되면 다른 시간을 찾아보고, 그래도 맞지 않으면 그냥 맞지 않는 채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데 몇몇 내담자가 상담을 중간에 그만둔 경험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혹시 내가 내담자의 일정에 충분히 맞춰주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한 학술대회에서 바우처 사업을 전국에서 아주 잘 운영한 사람의 성공사례를 들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내담자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내가 너무 내 방식만 고집했던 것일 수도 있겠네. 나도 한번 맞춰줘 보자.’


그래서 최근에는 내담자의 일정에 맞추려고 내 일정을 변경하기도 했다. 

운동이나 악기연습처럼 최근 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정까지 조정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미 여러 차례 일정을 변경했던 내담자가 또다시 예약을 취소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 일정을 바꾸어가며 맞춰주었는데 또 취소한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다른 것이 보였다.


‘내가 일정에 맞춰주지 않아서 상담이 중단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구나.’


일정을 맞춰주어도 상담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담을 지속하거나 중단하는 데에는 상담자의 개입 외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다. 

내담자의 상황, 동기, 경제적 여건, 생활의 변화, 상담에 대한 기대와 필요성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동안 몇몇 내담자가 상담을 중단한 이유를 너무 빨리 내 쪽에서 찾았던 것은 아닐까.


이번 경험을 통해 오히려 다른 변수에 더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나는 나름 신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신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분명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있었다.


다만 누군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 불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누군가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면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나?’ 하고 나의 방식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상대의 말을 듣는 것과 상대의 말에 따라 내가 움직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좋은 상담자의 경험도 배울 수 있다.


내담자의 불편도 살필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푹신한 의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단단한 의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가죽 의자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의자는 없다.


상담 일정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상담자에게 반드시 좋은 방법인 것은 아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은 내담자의 요구를 듣고 함께 조율하되, 그 과정에서 나의 시간과 삶도 존중하는 것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맞는 의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담실을 만들고 싶은지를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는 수많은 나그네가 지나간다.


“그렇게 하지 마.”

“이렇게 하는 게 좋아.”

“나는 이렇게 했더니 잘됐어.”


그 말들을 들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나귀의 방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


나는 이제야 이 오래된 우화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신조가 있다는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흔들릴 수도 있고, 잠시 다른 길로 가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서 흔들렸는지를 알아차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아침의 예약 취소는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기도 했다.


‘아, 내가 또 다른 사람의 성공사례를 보고 내 방식을 바꾸려고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난다.


나는 이 우화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당나귀를 메고 다니고 있다는 것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름 신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은 내가 당나귀를 메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웃을 수 있었으니까.


이제 다시 당나귀를 내려놓고, 내 길을 가면 된다.


내 당나귀는 내가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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