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과 채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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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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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서 한 젊은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지하철에 지갑을 두고 내렸다며 차비가 없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도를 믿습니까?’ 혹은 ‘하나님을 믿으세요?’ 같은 말을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잠시 이야기를 듣는데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마주친 곳은 지하철역에서 십 분 이상 떨어져 있었다.
지하철에 지갑을 두고 내렸다면 휴대폰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지인에게 연락하거나 지하철에 분실 사실을 문의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왠지 진짜 같지 않았다.
나는 짧게 대꾸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천 원 정도는 줬어야 했나?’
처음에는 내가 너무 매정했나 싶었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겹쳤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를 쉽게 요구해도 들어줄 것처럼 보이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그 사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어떤 도덕적 기준이 건드려진 것이었다.
나는 의외로 개인적인 도덕관이 높은 편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이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때때로 나를 지키는 나침반이 아니라 나를 심사하는 채점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남의 평가보다 오히려 내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나 자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정말 잘못이었는지보다 ‘나는 도덕적으로 틀린 사람이 된 것은 아닌가’를 다시 확인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비슷한 일이 하나 떠올랐다.
30대에 두 아이를 데리고 한자검정시험을 치르러 갔다가, 그곳에서 내가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그 아이가 길에서 천 원을 주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가 주변에 경찰이 없으니 선생님에게 주면 된다며 그 돈을 내게 건넸다.
나는 무척 당황했다.
경찰서에 가져가는 것도 내가 굳이 해야 할 일인가 싶었고,
그렇다고 그냥 가지고 있기도 찜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불편했던 것은 천 원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 이 문제를 내가 떠안아야 하지?’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일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30대의 나는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아버린 셈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내담자에게 종종 이야기한다.
‘상대가 내가 원하지 않는 선물을 주면 돌려주어도 됩니다.’
그런데 정작 30대의 나는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았다.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난처함과 책임이 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그것을 받아버렸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달랐다.
30대에는 남이 넘긴 책임을 받아버린 나가 있었고,
오늘은 남이 넘기려는 책임을 거절한 나가 있었다.
그 차이가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오늘 천 원을 주지 않은 것이 정말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젊은이가 거짓말을 했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상하다고 느꼈고, 그 판단에 따라 거절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이 정답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상대가 곤란해 보이면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맡아야 할 책임인지 아닌지를 살피기 전에 먼저 받아들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상대의 어려움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것을 내가 책임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안다.
도와줄 수도 있지만 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거절한 선택이 완벽하게 옳았다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이것이 예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인지도 모른다.
도덕적 기준은 원래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침반이 채점표가 된다.
‘나는 제대로 했나?’
‘나는 도덕적으로 틀리지 않았나?’
‘조금 더 해줄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 아닐까?’
그 순간 도덕은 나를 지켜주는 기준이 아니라 나를 심사하는 기준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보다 ‘도덕적으로 틀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정답을 알 수 없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거절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돌려줄 수도 있다.
그것 역시 도덕적인 선택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언제나 옳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정보와 감각 안에서 판단하고 선택한 뒤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덕성은 모든 문제에서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그 가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힘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 자신을 다시 법정에 세우지 않는 것.
이제는 내 도덕관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준으로 나를 계속 채점하고 싶지는 않다.
나침반은 가지고 가되, 채점표는 내려놓는 것.
아마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살아가되,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옳은 답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이것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돌려주는 것도 나를 지키는 하나의 도덕이다.
어쩌면 성숙해진다는 것은 더 많이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내 책임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남의 채점도 내 채점도 없이 살아가는 것.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내가 그 길을 완벽하게 걸었는지까지 채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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