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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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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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밥을 먹는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는 단순히 무엇을 좋아하고 얼마나 먹느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먼저 집을지, 마지막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할지, 상대에게 몇 번이나 권할지,
누가 계산할지에도 각자의 관계 방식과 마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 양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양보하는 모습을 통해 배려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기도 한다.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을 두고 서로에게 권하다가 결국 아무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동이 예의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서로 양보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먼저 먹으면,
음식을 먹은 것과는 별개로 관계에서 자신이 조금 밀려난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안 먹어요”라고 말하고도 한 번쯤 더 권해주기를 기다린다.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상대가 안 먹는다고 하면 더 이상 권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같은 밥상에 앉아 있어도 사람마다 음식을 대하는 방식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밥상도 그랬다.
시어머니는 살아생전 커피를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경로당에서 젊은 사람이 자신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집에 돌아와 그 사람의 행동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권하지 않은 것은 상대에게는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는 마시지 않더라도 한 번 권하는 것이 정이었다.
커피를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나에게도 밥상에 관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지인 두 사람과 명태찜을 먹으러 갔다.
세 마리의 명태가 바닥에 놓이고 그 위에 콩나물찜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집에 처음 갔기 때문에 명태가 통째로 놓여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 쪽에 있던 머리 쪽을 먹고 가운데에 있던 꼬리 쪽을 먹었다.
그런데 함께 온 사람이 콩나물을 걷어내다 명태가 통째로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어머나, 내가 머리와 꼬리를 다른 쪽으로 먹었네.”
하며 웃었다.
그 사람은 이 집에 전에 와본 적이 있어서 원래 이렇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누가 어느 부위를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몰랐던 것을 함께 알아차리고 웃었던 그 시간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것을 챙겨 먹는 편이기도 하다.
어릴 때 입이 짧아서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그때 많이 먹어두곤 했는데,
지금도 그 습관이 조금 남아 있다.
치킨을 먹을 때는 날개를 좋아한다.
프라이드치킨의 날개는 내가 좋아하니 먼저 하나 챙겨 먹고,
가끔은 양념치킨의 날개도 가져다 먹는다.
아이들과 먹을 때는 서로 날개를 차지하려고 작은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건 내가 먹을 거야.”
“나도 먹을 건데?”
그런 말들이 오가면서 우리는 웃었다.
지금 남편과 치킨을 먹을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날개를 먹는 일은 편해졌지만, 어쩐지 재미는 덜하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좋아했던 것은 날개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날개 하나를 두고 서로 말하고 웃고 장난치던 시간이 좋았던 것이다.
밥값을 내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이 먼저 돈을 내야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는 얻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정확하게 1/n을 해야 마음이 놓이고,
어떤 사람은 이번에는 내가 사고 다음에는 네가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권하는 방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을 먹는 방식도 다르고, 돈을 내는 방식도 다르다.
무엇이 더 예의 바른지, 어떤 방식이 더 좋은 식사인지 하나의 기준으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밥상에서는 사람마다 관계를 살아가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양보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상대가 알아서 선택하도록 기다리고,
누군가는 한 번 더 권하는 것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그 밥상을 기억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누가 밥값을 냈는지, 누가 음식을 조금 더 많이 먹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누가 챙겨주었는지, 몇 번이나 나에게 먹으라고 권했는지가 오래 남을까.
물론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세심한 배려가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반대로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일이 마음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얼마나 웃었는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밥은 결국 배를 채우는 일이지만, 사람과 함께 먹는 밥은 음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밥상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기억하고 싶다.
무엇을 받았는지, 얼마나 공평했는지를 따지기보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면서 어떤 마음을 나누었는지가 남았으면 한다.
누군가와는 실컷 웃고 싶고, 누군가와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누군가와는 편안하게 침묵하고 싶고, 누군가와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치고 싶다.
사람마다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의 모습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밥상에 앉는다는 것은 음식을 선택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나중에 내가 이 밥상을 기억한다면 무엇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가.
그 질문을 해보면 내가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도 조금 선명해진다.
어쩌면 밥상에서 오래 남는 것은 음식의 맛이나 밥값의 크기가 아니라,
그때 함께했던 사람과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함께 웃었던 순간, 나누었던 이야기,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된 순간.
결국 밥상에 남는 것은 음식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그때의 마음도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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