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몸에 맞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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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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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작은 게 없어.”
아들이 어느 날 내게 한 말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릇도 컸고, 냄비도 컸고, 음식도 많이 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도 대체로 컸다.
그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산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내가 필요로 하는 크기보다 훨씬 큰 것들을 가지고 살았다.
나는 원래 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꼭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큰 것이 주어졌고, 나는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살림은 컸다.
가족이 많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것을 저장해야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큰 살림을 이어받았다.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큰 그릇을 여러 개 사다 주면 그것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큰 삶의 크기에 익숙해졌다.
젊었을 때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많은 음식을 만들고, 많이 저장하고, 많은 일을 해도 몸이 받아냈다.
힘들기는 해도 해낼 수 있었으니 굳이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몸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큰 살림을 한다면 이제는 아마 몸살이 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삶도 조금씩 작아졌다.
예전에는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갔다.
김치냉장고가 필요했고, 많이 담가두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은 두 포기 정도만 담근다.
그러고 보니 김치냉장고도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만큼만 하니 필요한 물건도 줄어든다.
예전에는 몸이 삶을 따라갔다면, 지금은 삶이 몸을 따라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이 작아질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 잘 보인다.
작은 그릇이 좋고, 적은 양을 만드는 것이 좋다.
내 몸이 무리하지 않는 정도의 살림이 좋다.
나는 이제야 내가 어떤 크기의 삶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살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나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어른이 주면 안 먹어도 받아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 사람이 정한 크기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많이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랑하면 많이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마음은 고맙게 받을 수 있지만 그 크기까지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워도 각자의 것이 있을 수 있고, 사랑해도 필요한 만큼만 줄 수 있다.
내게 필요한 크기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간다.
어쩌면 나와 너 사이의 경계가 생기는 일도 이와 닮아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많이 받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선택하는 사람으로 가는 것.
예전에는 몸을 삶에 맞췄다면, 지금은 삶이 몸에 맞아진다.
젊을 때는 내가 삶을 감당했다면, 지금은 삶도 나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의 작아짐이 싫지 않다.
오히려 작아지면서 내 것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 내가 편안한 것.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내게 맞는 삶의 크기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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