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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맡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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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10-05 09:26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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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반복해서 경험한 감정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특정한 역할을 맡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무력했던 사람은 통제하려 하고,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은 사랑을 주려 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은 유능해지려 하고,
외로웠던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 역할은 단순한 성격이나 습관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이 견디기 어려웠던 감정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무력했던 사람은 통제하려 한다.


통제하고 있을 때만 자신이 삶의 주인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이 많았던 사람은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자신이 결정하는 사람이 되려 할 수 있다.
그래서 통제는 때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구라기보다
다시는 무력한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자기보호일 수 있다.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은 사랑을 주려 한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면 적어도 사랑의 바깥에 서 있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고 있으면
적어도 나는 사랑과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은 유능해지려 한다.


잘하는 사람이 되면 자신도 선택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 하고,
더 많이 알고, 더 잘하고, 더 성취하려 한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어 보이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나는 충분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외로웠던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맡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를 쉽게 놓지 못한다.

쓸모 있음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증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기도 한다.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사람은 맞춰주려 한다.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은 필요한 사람이 되려 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이 컸던 사람은 완벽하려 한다.


흠이 드러나지 않으면 다시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웠던 사람은 질서를 만들려 한다.


예측할 수 있고 정리된 세상에서는
적어도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력했던 사람은 힘을 가지려 한다.


다시는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은 자신의 직위나 권한을 칼처럼 휘두르며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때 마음속에는
“다시는 저런 힘 앞에서 무력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누군가가 가진 직위 때문에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하겠다.”
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강해지려 한다.


이때의 강함은 누군가를 누르기 위한 힘이 아니라
다시는 무력한 자리에 놓이지 않기 위한 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때로 수치심도 함께 놓여 있다.


“왜 나는 그것을 막지 못했을까.”
“왜 나는 저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당해야 했을까.”


무력함이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수치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강함은
단순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무력감과 수치심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반복해서 맡는 역할에는
각자의 역사가 숨어 있다.


누군가는 통제하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며,
누군가는 유능한 사람이고,
누군가는 늘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강한 사람이 된다.


그 역할만 보면 그 사람의 성격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역할이 생겨난 자리를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 무력감이나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수치심이 놓여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이 역할을 좋아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역할을 하고 있을 때만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역할은 한때 나를 살게 했을 수 있다.


통제함으로써 무력감을 견디고,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의 결핍을 견디고,
유능해짐으로써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세우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외로움을 견디고,
강해짐으로써 무력감과 수치심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역할을 무조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역할을 선택하는 것인지,
내 감정이 나 대신 역할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선택하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택지는 보이는 만큼 넓어진다.


어쩌면 회복은
내가 더 좋은 역할을 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 역할로 이끌었던 감정을 알아보고
그 감정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 나를 지켜주었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그 역할이 내 삶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감정이 내게 맡긴 역할과
내가 지금 선택하고 싶은 삶을 구분하는 것.


그때 비로소
역할을 수행하는 삶에서
내가 선택하는 삶으로 조금씩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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