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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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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10-05 17:44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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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이나 월식을 볼 때면 두 개의 동그라미가 떠오른다.


일식은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이면서 태양의 일부나 전부가 가려지는 현상이고, 

월식은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놓이면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현상이다.


서로 다른 천체가 같은 선상에 놓이는 순간, 

우리의 눈에는 하나의 동그라미가 다른 동그라미와 겹치거나 가려져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두 천체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부모와 자녀도 그런 두 개의 동그라미가 아닐까.


아이는 처음에는 부모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오랫동안 서로의 삶이 많이 겹쳐 있기 때문에 

자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은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쉽지만은 않다.


특히 부모의 불안이 크면 그 불안이 자녀에게 건너가기도 한다.


자녀가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부모가 계속 흔들리면 

자녀는 자신의 삶보다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불안을 자기 안에서 감당할 수 있다면 자녀에게 건너가는 불안도 줄어든다.


부모가 자기 삶을 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녀에게 하나의 독립 공간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이의 방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분명해진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을 키우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아이의 공간을 계속 확인하려 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불안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의 방문을 아예 뜯어버리는 것이다.


부모에게 문은 불안을 만드는 경계였을 수 있다. 

문이 있으면 아이의 세계를 볼 수 없지만, 문을 없애면 적어도 눈앞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을 뜯는 행동은 아이를 통제하려는 행동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불안을 다루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이 뜯긴 아이에게 그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중학생이 되면 자신의 방에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혼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을 품기도 한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기억이 만들어지고, 때로는 부모에게 말하지 않을 작은 비밀도 생긴다.


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부모의 세계와 조금씩 분리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방의 문이 사라진다면 아이는 자기 세계를 닫아둘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잃게 된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거부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요.’
‘여기는 내 공간이에요.’
‘들어오기 전에 노크해 주세요.’


이런 말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도 하다.


부모에게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운 문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경계를 경험하고 연습할 수 있는 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의 경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간섭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공간과 마음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와 연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부모에게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고, 

부모 역시 자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연락의 양보다 그 마음일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어서 이야기하는 것과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것.


전자는 관계의 친밀함이지만, 후자는 때로 관계의 의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녀가 배우자를 만나면 새로운 동그라미가 생긴다.


이제는 자녀와 배우자가 자신의 삶을 함께 만들어가며 두 사람의 동그라미를 깊이 겹쳐야 한다.


이때 부모가 이전처럼 자녀와 깊이 겹쳐 있다면 세 개의 동그라미가 되고, 

배우자의 부모까지 깊이 들어오면 더 많은 동그라미가 겹치게 된다.


삶뿐 아니라 감정과 책임의 경계까지 얽히기 쉬워진다.


그래서 자녀가 자신의 가정을 만들어갈수록 부모는 자신의 동그라미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물러나는 것은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배우자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동그라미는 많아져도 모든 동그라미가 겹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삶이 분명할수록 오히려 만날 때는 더 편안하게 겹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궤도를 잘 살아간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관계는 이어질 수 있고 다시 만나는 순간은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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